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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사례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사례

 

  직접 민주주의의 출현: 아테네의 배경

고대 아테네는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현한 도시국가로, 기원전 5세기경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아테네는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공정한 정치 체제를 모색했고, 이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제도로, 대표자에 의존하는 간접 민주주의와 차별화된다. 이러한 체제는 폴리스라는 소규모 공동체의 특성과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의 참여를 전제로 가능했다.

 

 

 

  민회(에클레시아) : 시민의 의사 결정 기구

아테네 민주주의의 중심은 민회(에클레시아)였다.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이 기구는 국가의 주요 법안을 결정하고, 전쟁과 평화 같은 중대 사안을 논의하는 권한을 가졌다. 민회는 일반적으로 1년에 약 40회 열렸으며, 성인 남성 시민들은 이곳에서 직접 발언하고 투표할 수 있었다. 중요한 법률과 정책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으며, 다수결 원칙이 적용되었다.

 

 

민회는 시민들이 대표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여(직접 민주주의 체제) 국가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공간이었다. 모든 성인 남성 시민이 민회에 참석할 의무와 권리를 지녔고, 이곳에서 법률 제정 / 전쟁과 평화의 결정 / 공직자의 선출, 심지어 공직자의 탄핵까지 논의하고 투표했다.

민회의 특징을 보면, 직접 민주주의의 본질이 잘 드러난다.

 

 

- 참여의 직접성 : 시민이 정책이나 법안에 대해 직접 토론하고 투표함.

- 공론의 장 :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발언할 기회를 가짐.

- 다수결 원칙 : 다수의 의견이 의사 결정에 반영됨.

 

 

 

 

  추첨제와 공직 : 평등을 지향하는 제도

아테네는 공직 임명에서 추첨제를 도입하여 부유층이나 귀족의 과도한 권력 독점을 방지했다. 대표적인 예가 500인 평의회(불레)로, 이는 민회에서 논의할 의제를 준비하고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1년 임기의 평의원은 각 부족에서 추첨으로 선발되었으며, 이는 시민 모두가 정치에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였다. 또한, 재판소(헬리아이아) 역시 시민들로 구성되어 중요한 재판을 다루었다.

 

 

 

Q. 추첨제가 꼭 평등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을까?

추첨제가 평등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특정 개인이나 계층이 아닌,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공직에 임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데 있다고 이해는 하지만, 성인 남성 시민만 참여 가능했다는 불평등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기에 평등을 지향하는 제도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추첨을 위해 사전에 후보를 추천하거나 자격 조건을 설정했다면 선택 과정에서 의중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 결과가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계와 영향 : 제한된 시민권과 현대적 의미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혁신적이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참여권은 성인 남성 시민에게만 주어졌고, 여성, 노예, 외국인은 제외되었다. 이는 인구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 권리를 가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며,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형성했다.